▲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e-뉴스 25=백지나 기자] 법인 대표자가 범죄 목적으로 법인 명의 계좌를 이용해 금융거래를 했다면 금융실명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범죄수익은닉규제법과 금융실명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 등 사건에서 지난달 5일 금융실명법 위반 무죄 부분 등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에 돌려보냈다.
이들은 2023년 4∼7월 온라인도박·투자사기 범죄조직에 상품권 매매업체를 가장한 허위 법인 명의 계좌를 제공하고, 계좌로 송금된 범죄수익금을 현금으로 인출해 범죄조직원들에게 전달하며 수수료를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쟁점은 일부 피고인이 범행 과정에서 허위 법인의 대표자로서 법인 명의 계좌로 금융거래를 한 것을 두고 금융실명법상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타인'의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한 행위로 보고 처벌할 수 있는지였다.
2심은 이들의 다른 혐의를 인정해 각각 징역형 집행유예 또는 징역형을 선고하면서도,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법인 대표이사 자격에서 법인 명의로 한 금융거래를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타인의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한 경우'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회사는 법인으로서 특성상 자연인과는 달리 기관을 통해 활동할 수밖에 없으므로, 대표이사가 자신이 대표이사로 재임하는 주식회사 명의 계좌를 사용하는 행위는 '주식회사가 대표이사를 통해 자신 명의 계좌를 사용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등기상으로는 '상품권 매매업'을 사업목적으로 기재했지만, 실제로는 오로지 범죄수익금 자금세탁 등 범죄를 목적으로 법인을 설립한 것이므로 금융실명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법인의 대표자 지위에 있는 행위자가 형식적으로는 법인 명의로 금융거래를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자신의 범죄 등을 위해 법인 명의를 수단으로 삼아 자신의 금융거래를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경우 그 금융거래는 처벌 규정에서 정한 '타인의 실명으로 한 금융거래'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금융거래에 해당하는지는 오로지 범죄 등 목적으로 법인을 설립해 그 목적을 위해 금융거래 계좌를 개설·이용했는지를 포함해 법인 설립 목적과 경위, 금융거래 계좌 개설 경위와 이용 현황, 법인의 실제 운영 현황과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