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새업무 스트레스·격무 시달리다 숨진 30대 은행원…법원 "업무상 재해"
  • 백지나 기자
  • 등록 2025-08-04 14:15:20
기사수정
  • 근로공단, '46시간' 근무기록 근거로 '과로 사망' 불인정
  • 법원 "개인 노트북 등으로 잔업…업무시간 훨씬 길어"


[e-뉴스 25=백지나 기자] 추가근무를 줄이기 위해 도입된 '업무용 PC 오프제'를 시행하던 은행에서 과로로 숨진 38세의 은행원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이주영 부장판사)는 은행원 A씨의 부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례비 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A씨는 지난 2012년 B은행에 입사해 2023년 1월부터 기업 여신 심사 업무를 맡았다. 같은 해 3월 26일 골프 연습을 위해 연습장을 찾았다가, 오후 2시께 주차된 차량 운전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나이 38세인 A씨의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이었다.


급성심근경색은 혈관이 막혀 발생하는 질환으로, 장시간 근로가 주요 위험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A씨의 부모는 사망이 과로와 스트레스에 따른 업무상 재해라고 주장하며 유족급여 및 장례비 지급을 신청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2024년 1월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다"며 부지급 결정을 내렸다. 이에 유족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만성적인 과로 또는 업무와 관련한 스트레스가 급성심근경색 발병에 기여했거나 자연적인 경과 이상으로 악화시켜 그 결과 고인이 사망했다"며 "고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공단은 A씨의 업무용 PC 로그기록을 기준으로 사망 전 12주 동안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을 46시간 24분으로 산정했다. 당시 은행에는 직원 출입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고, 공단은 업무용 PC의 전원이 꺼진 시간을 기준으로 근무시간을 계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업무용 PC는 평일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만 사용할 수 있고, 그 외 시간에는 연장사용 승인을 받아야 했다"며 업무 종료시간에 맞춰 PC 사용을 제한하는 PC오프제로 인해 근무 시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또 연장 사용 승인은 번거롭고 주당 12시간 한도라는 제약이 있어 직원들이 외부망 PC나 개인 노트북을 통해 업무를 하는 경우 등을 언급하며 "A씨가 업무용 PC 사용 시간에만 업무를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A씨가 맡은 업무의 특성 역시 스트레스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됐다. 실제 그는 사망 직전 5건의 여신 심사를 불승인했는데, 재판부는 주변 동료들의 진술 등을 고려해 "영업점에 여신 불승인 통보를 하는 과정에서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TAG
0
대한민국 법원
국민 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