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전경. (사진=연합뉴스)
[e-뉴스 25=백지나 기자] 1심에서 무죄를 받은 피고인이 2심 중 법정구속되자 자백해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피고인 자백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파기환송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제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0년 10월 제주 서귀포 한 농로에서 트랙터를 타고 왕복 2차선 도로로 좌회전해 진입하다가 오토바이를 들이받아 오토바이 운전자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가 도로 진입 전 일시정지 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2심은 2회 공판기일에 증거 인멸과 도망 염려가 있다며 A씨를 법정구속했다. 이후 A씨의 변호인은 '피고인은 교차로 진입의 우선권이 없다는 재판장의 지적을 듣고 자기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닫게 돼 피고인에게 과실이 있음을 모두 인정하게 됐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검찰은 '교통정리가 없는 교차로에서 양보운전 방법을 위반한 과실'을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했고, A씨는 3회 공판기일에서 "변경된 공소사실을 인정한다"며 앞서 제출한 변호인 의견서를 진술했다.
2심 재판부는 같은 날 변론을 종결하고 A씨의 법정진술 등을 증거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의 구속 과정과 이후 이뤄진 자백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았다.
대법원은 "이 사건 구속은 객관적·외부적 사정변경이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이뤄졌단 점에서 형사소송절차에서 피고인의 지위나 처지를 고려해 신중하게 이뤄진 것인지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불구속인 상태에서 형사공판절차를 진행하는 법원은 기초가 되는 증거나 사실관계의 변경이 객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분명하지 않은 상태라면 피고인을 구속하는 데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다만 구속이 위법·부당한 것까지는 아니므로 자백의 임의성(자발성)이 부인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증거능력 자체는 인정되나 그 신빙성과 증명력은 떨어진다는 취지다. 증거능력이란 증거가 증명의 자료로 사용될 수 있는 법률상의 자격을 말하고, 증명력은 그 증거의 실질적 가치를 의미한다.
대법원은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구속된 사람은 허위자백을 하고라도 자유를 얻고자 하는 유혹을 느끼는 경우가 있으므로, 부인하던 피고인이 법원의 구속 이후 갑자기 자백한 사건에서 단순히 '공소사실을 인정한다'고 한 진술의 신빙성이나 증명력을 평가할 때는 그 사정을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A씨가 앞서 일관되게 유지하던 입장을 구속 직후 번복해 갑자기 유죄를 인정한 점 등을 고려할 때 해당 진술이 자백으로서 유력한 증거가치를 갖는다고 단정할 수 없단 것이다.
대법원은 "원심으로선 석명권을 행사하는 등 그 취지를 정확하게 밝혀보고, 당시 채택돼 있던 목격 증인들에 대한 신문절차를 거쳐 그 신빙성을 진지하게 살펴봤어야 한다"며 "그럼에도 공판기일 진술을 주된 증거로 삼아 유죄로 판단한 원심에는 자백의 신빙성이나 증명력에 관해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